- 2010/12/30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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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글수 : 23
자고 일어나니 이오공감에 올라 소설가에 좌빨이 되었군요.


진짜 저게 무상급식보다 순위가 떨어지는 사안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만약 자신이 저소득층 학부모라고 치자.
자신의 아이가 부분적 무상급식으로 인해 가난을 인식하고 열등감과 자괴감을 느낀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열등감과 자괴감을 없애기 위해
학교에서 다쳤을 때 좀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
과학 시간에 좀 더 나은 교재로 실험할 수 있는 기회
학교에서 영어를 좀 더 잘 배울 수 있는 기회
좀 더 좋은 교실에서 수업받을 수 있는 기회
좀 더 깨끗하고 안전한 급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
다달이 뭉텅뭉텅 빠져나가는 등록금을 줄일 수 있는 기회
이 모든 기회를 포기할 부모가 있을까?
정확히 얼마나 줄어드는지, 100% 줄어들기나 하는지 측정할 수도 없는 열등감과 자괴감 해소가 교재와 교실 시설, 급식 위생, 학비 절감보다 아이들의 미래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말인가?
정말 가난을 겪었고 저소득층의 생활과 심리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입이 두 쪽이어도 저런 말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태그 : 무상급식
- 2010/12/29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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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글수 : 105
무상급식? 반대하는 사람들, 가난을 느껴보았나?
트랙백된 원문이 주장하는 바는 논거로 사용된 경험담을 제외하면 딱 한 문단이다.
동사무소에서 신고를 하고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어쩌고 저쩌고 쉽게 말하는 정치인과 사람들에게 말한다. 아이들이 반드시 자신의 가난이 누군가에 알려져서 상처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아이들은 상처를 받는다. 어른의 생각과 논리로 판단하려고 들지 마라. 내가 공짜밥을 먹는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는 자체가 힘들고 상처가 되는 일이다. (Master)
원문에 달린 첫 댓글처럼 딱 '공산주의'라는 말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문구다. 소득 격차에 따른 구분 자체를 없애려면 말 그대로 모든 인민이 평등하게 배급 식량과 배급 의복, 배급 주택, 배급 직장을 받아 살아가는 공산주의 사회를 이룩해야 한다. 이 글의 요지는 '소득 격차로 인한 소외감 해소를 위해 무상급식을 도입해야 한다.'인데 현실에서 무상급식만으로는 아이들의 소외감이 해결되지 않는다. 다들 어린 시절에 겪어봤다시피 아이들은 교복이 달라도 소외감을 느끼고 핸드폰이 없어도 소외감을 느끼고 친구 생일 파티 때 자기 집이 친구 집보다 작다는 걸 알아도 소외감을 느끼고 돈이 없어 비싼 수학여행을 가지 못할 때도 소외감을 느낀다. 소외감을 느낄 분야는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공산주의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장장 90년에 달하는 거대한 실험(보통 '소련'이라고 부르는)을 시도했다가 깔끔하게 망했다.
물론 소외감을 느끼는 문제는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고, 그렇기에 더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안다. 어차피 다 자라면 사회의 냉혹함을 싫어도 겪게 될 텐데 어린 시절만큼은 그래도 유토피아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게 해주고픈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진정 아이들의 장기적인 미래를 생각한다면 어설픈 무상급식은 아이들의 눈을 가리는 짓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문제 자체를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가난을 해결하고 싶다면 자신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 자기가 아주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 똑같은 꿈을 꾸더라도 다른 사람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이고 고통을 감내해야 겨우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 올망졸망 어깨동무하던 친구들이 양반 상놈처럼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분명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인지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문제 해결은 시도조차 할 수 없다.
어른이 되어서 자기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보통 많이 늦은 경우다. 공부가 가장 쉬웠다는 장승수 씨도 성인이 되어서야 빈곤한 환경을 탈출하려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남들은 이미 졸업 준비를 하는 스물다섯 살에야 겨우 서울대에 입학했다. 일찍부터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성인이 되기 전에 확실히 목표를 정하고 이에 매진해야 한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들려주던 다정한 말들 속에서 본인이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조차 명확히 깨닫지 못하다가, 더 이상 아무런 동정도 위로도 받을 수 없는 성인이 되고 나서 정작 물 밀듯이 닥쳐온 현실에 당황하고 좌절하는 경우는 수두룩하게 많다.
요즘 들어 고등학생인 동생에게 입버릇처럼 말해주는 게 있다. '타인에게는 좌파를 시키되 너 자신은 우파처럼 살아라.' 한 마디로 입진보가 되라는 뜻인데, 이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스펙 관리, 자기계발, 간판 따기 등은 대체로 좌파가 혐오하는 행태다. 그러나 가난한 이가 이런 행태들을 등한시하면 평생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냉혹한 경쟁 체제를 타파하고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며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다. 실제로 지난 세기 동안 수많은 좌파적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각종 복지 제도와 의식이 존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난한 이가 직접 좌파적인 노력을 기울여 얻어낸 개혁과 혁신의 산물을 그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경우는 얼마 되지 않는다. 제도적 개혁을 주창하는 데는 노력과 시간이 들고, 개혁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데에도 역시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전태일만 하더라도 온 몸을 불살라 노동 3권을 외쳤지만 결국 노동자에 대한 처우 개선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그가 죽고 난 지 한참이 지난 뒤였다. 설령 전태일이 살아 남았더라도 노동자의 권리를 누리는 데에는 긴 세월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것이 저소득층이 겉으로는 좌파적인 가치를 추구하더라도 스스로는 우파적인 가치를 체화시켜야 하는 이유다. 즉, 표는 진보정당을 찍되 살기는 마치 한나라당 추종자들이 살듯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소득층이 직접적으로 자기 처지를 개선하려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그 수혜는 후손들이 누리는 것이나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제도적으로 저소득층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것은 소위 패션 좌파, 강남 좌파라고 하는 중산층 좌파들이다. 중산층은 자기 계급의 이익을 주장하는 데 저소득층을 끼워줌으로써 도덕적 명분과 설득력을 얻고, 저소득층은 물질적·제도적인 혜택을 입는다. 저소득층이 이런 혜택을 극대화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명확히 인식하고 이 계급을 탈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문제는 트랙백 원문이 주장하는 무상급식안이 이런 노력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합하자면 아이들의 계급적 위화감을 없애기 위해 무상급식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실제로 위화감을 없애주지도 못하며, 궁극적으로는 계급 탈출에 방해만 된다는 사실이다. 차라리 학비 지원에나 예산을 더 몰아주는 게 저소득층의 사회적 총잉여를 증진시키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태그 : 무상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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